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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대릉원, 고분의 곡선 사이를 천천히 걷다

GATOUR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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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대릉원은 담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풍경의 눈금이 달라진다. 시내의 집과 가게가 멀지 않은데도, 잔디를 입은 커다란 봉분들이 걷는 사람의 속도를 자연스레 늦춘다. 고분은 건물처럼 정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옆으로 돌아가고, 두 무덤 사이의 낮은 길을 지나야 비로소 크기와 간격이 읽힌다. 경주에서 오래된 시간을 가장 편안하게 만나는 방법은 고분 앞에서 사진 한 장을 찍고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그 곡선 사이를 충분히 걷는 일이다.

도시 한가운데 놓인 스물세 개의 시간

경주시 문화관광에 따르면 대릉원에는 약 12만 6,500㎡의 땅에 신라 시대 고분 23기가 모여 있다. 규모만 외우고 들어가면 이곳의 재미를 놓치기 쉽다. 작은 봉분을 지나 큰 봉분을 만나고, 다시 나무 사이로 다른 고분이 나타나는 리듬이 대릉원의 인상이다. 봉분 위로 올라가거나 잔디를 가로질러 지름길을 만드는 대신 정해진 길을 따라 천천히 돌아보자. 무덤 하나의 높이보다 무덤들이 서로 어떻게 놓였는지 보이는 순간, 단순한 공원이 아닌 고분군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황남대총의 두 봉우리를 읽는 법

대릉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윤곽은 두 봉분이 이어진 황남대총이다. 경주시 공식 소개는 남북으로 이어지는 표형분이며 경주에서 가장 큰 고분이라고 설명한다. 가까이 서면 한 번에 담기 어려운 둥근 면이, 조금 떨어지면 두 봉우리의 연결로 보인다. 그래서 사진을 찍더라도 한 지점에 오래 매달리기보다 걸음을 옮겨 형태가 바뀌는 모습을 보는 편이 좋다. 발굴 당시 수많은 유물이 나왔지만, 겉에서는 내부의 화려함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 간극이 오히려 고분 앞에 오래 서 있게 만든다.

천마총은 산책과 다른 관람이다

대릉원 산책은 무료지만 천마총 내부에 들어가려면 별도 입장권이 필요하다. 같은 장소 안에 있어도 경험은 다르다. 바깥에서는 봉분의 형태와 주변 풍경을 보고, 천마총에서는 무덤의 구조와 출토 유물을 통해 땅속의 이야기를 만난다. 공식 안내에 따르면 개인 요금은 성인 3,000원, 청소년·군인 2,000원, 어린이 1,000원이다. 아이와 함께 간다면 바깥에서 먼저 봉분이 왜 이렇게 둥근지 이야기한 뒤 내부를 보는 순서가 좋다. 역사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풍경과 유물이 연결되는 순간이 있다. 반대로 내부 관람까지 빽빽하게 넣을 필요는 없다. 걷는 것이 목적이라면 산책만으로도 방문은 충분하다.

미추왕릉과 한 그루의 나무

대릉원의 길은 황남대총과 천마총만 이어주지 않는다. 경주시가 주요 고분으로 소개하는 미추왕릉도 함께 살펴볼 만하다. 미추왕릉에는 죽어서도 신라를 지켰다는 ‘댓잎군사’ 설화가 전한다. 설명판을 읽고 무덤을 다시 보면 부드러운 잔디 언덕에 역사와 이야기가 겹친다. 고분 사이에 목련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포토존도 유명하지만, 목련꽃은 봄에만 핀다. 가을 방문을 봄 사진의 재현으로 생각하지 말자. 꽃이 없어도 고분 사이의 빈 공간과 나무의 형태가 남는다. 계절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보는 편이 장소에 더 정직하다.

한 끼와 다음 걸음은 담장 밖에서

대릉원에서 나오면 식사는 황리단길 쪽으로 이어 붙이기 쉽다. 경주시 공식 도보 코스도 황리단길과 대릉원을 가까운 구간으로 연결한다. 점심을 먼저 먹고 후문 쪽으로 들어와 고분을 걷거나, 이른 오후 대릉원부터 본 뒤 황리단길에서 늦은 식사를 하는 두 방식 모두 자연스럽다. 특정 가게 한 곳을 목적지로 삼기보다 당일 영업 여부와 대기 시간을 보고 고르면 걷는 흐름이 덜 끊긴다. 시간이 남는다면 대릉원에서 첨성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더할 수 있다. 다만 시내 유적을 모두 하루에 넣기보다, 고분을 제대로 본 날에는 한 곳만 더 선택하는 편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이 산책을 권하는 사람, 권하기 어려운 사람

경주의 유적을 박물관 유리장 밖에서 먼저 느끼고 싶은 사람, 급한 일정 없이 평지의 길을 걷고 싶은 사람,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이야기하며 움직일 곳을 찾는 사람에게 권한다. 반대로 고분의 내부를 모두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거나, 유명 포토존에서 사람 없는 사진을 반드시 얻어야 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천마총을 제외한 고분은 바깥에서 바라보는 유적이며, 붐비는 시간에는 사진보다 산책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밤 관람도 가능하지만 잔디의 색과 고분의 표정을 읽고 싶다면 낮에 들어가는 쪽을 권한다.

방문 전 확인할 정보

대릉원 주소는 경북 경주시 황남동 31-1이다. 2026년 10월 29일 경주시 문화관광 대릉원 안내를 확인한 기준으로 관람시간은 09:00~22:00, 매표 마감은 21:30이다. 대릉원 입장은 무료이며 천마총 내부 관람은 유료다. 대릉원 공영주차장과 노동공영주차장은 유료, 쪽샘 임시주차장은 무료로 안내되지만 주차 가능 여부와 운영은 현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정확한 연령 구분과 할인 조건은 경주시 공식 입장료 안내에서 확인하자. 황리단길·첨성대 연계는 경주시 도보 여행 코스를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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